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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령의사수필문학상

수필은 마음의 산책입니다. 그 속에는 인생의 향기와 여운이 숨어있다. - 피천득의 '수필'중에서

내 모습은 밤 11시 30분

  • 연도2020년
  • 수상대상
  • 이름장석창
  • 소속부산탑비뇨의학과의원

미세한 비대칭에서 나를 발견한다.  

  늦은 오후, 나는 수영강변의 산책길을 걷고 있었다. 비가 온 뒤라 미세먼지가 사라지고 신선한 강 내음을 맡을 수 있어서 좋았다. 집에서 멀지 않고, 잠시 생각을 정리하기 좋은 곳이기에 찾곤 한다. 햇살에 길게 드리워진 내 그림자를 따라 걷던 중, 머리를 왼쪽으로 살짝 기울이고 있는 내 모습을 보게 되었다. 얼마 전부터 재발한 경추통증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그리 됐던 모양이다. 씁쓸했다. 경추 제5-6번 추간판탈출증, 지금껏 살아온 내 인생의 결과물인 듯하다.

 

  고개를 들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신이 나서 뛰노는 아이들, 데이트를 즐기는 젊은 연인들, 걷기 운동에 열심인 중년남녀들, 유유히 거니는 노부부들. 모두가 평온하면서도 익숙한 광경들이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무채색 흑백사진처럼 내 눈에 들어온다는 것. 뭉쳐진 목 근육 때문에 눈에 혈류저하가 생겨 일으킨 착시현상일까. 아니면 통증 때문에 생긴 울적한 마음의 발로일까. 그것도 아니면 만사를 부정적으로 보려하는 내 사고방식의 반영일까. 오늘따라 색채가 왜곡돼 보인다. 

 

  몇 년 전의 일이다. 퇴근길에 운전하다가 신호대기 중이었다. '쾅'하는 소리와 함께 몸이 앞으로 쏠렸다가 뒤로 젖혀짐을 느꼈다. 어질했다. 운전대에 몸을 기대어 정신을 가다듬고 있는데 한 중년남자가 차창을 두들겼다. 정차 중에 후방추돌을 당했던 거였다. 내 몸을 살펴보니 특별한 외상은 없었다. 너무 놀라서 가해자의 정중한 사과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집에 돌아와서도 머리가 멍하고 가슴이 두근거려서 잠을 이루지 못했다.

 

  아침에 일어나니 목과 허리에 통증이 왔다. 출근길에 주위의 신경외과 의원을 찾았다. 평소 안면이 있던 담당의사에게 자초지정을 말하고 경추와 요추 사진을 찍었다. 촬영 후 담당의사와 면담을 했다. 데자뷰(deja vu)였을까. 모니터에 등장한 경추 사진과 담당의사의 설명은 의과대학 시절 경추환자의 사진을 보면서 들었던 신경외과 강의처럼 내게 다가왔다.

  “요추는 괜찮은데 경추가 상당히 안 좋네요. 경추에 전반적인 퇴행성 변화가 있고, 경추부의 정상 굴곡이 사라졌습니다. 이른바 일자목이지요. 게다가 경추 4번에서 7번사이의 정렬은 톱니 모양으로 들쭉날쭉합니다. 그리고 경추 5번과 6번사이의 추간공이 좁아져 있습니다.”

  충격이었다. 나는 경추질환자였다. 평소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기에 더욱 혼란스러웠다. 오후부터 목과 허리를 돌아가면서 통증이 심해졌다. 경추 MRI 촬영을 해보니 경추 제5-6번 추간판이 돌출되어 있었다. 다행히 척추신경의 손상은 경미했다. 어쩌면 내 경추상태는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어릴 적부터 나는 앉으나 서나 자세가 구부정했다. 

 

  다급한 마음에  체형교정 전문클리닉을 찾았다. 그곳 치료사는 서있는 내 몸의 이곳저곳을 바로잡아 주며, 이게 바른 자세라고 했다. 허리는 세우고, 가슴은 펴고, 턱은 당기고…. 어색했다. 잠시도 그 자세로 서있기 힘들었다. 그만큼 내 몸은 중심선에서 벗어나 있었다. 그곳에서는 도수치료를 해주면서 내가 스스로 할 수 있는 코어근육 강화운동과 주변 근육들에 대한 스트레칭 방법을 알려 주었다. 그 후 나는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스트레칭과 운동을 했다. 의식적으로 자세도 똑바로 하려고 노력했다. 그날의 사고는 내 인생의 변곡점이었다. 그 후 경추문제는 늘 내 삶과 동행하였고, 내 일상은 많이 변했다. 그렇게 1년 정도를 지내니 특별히 피곤하거나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을 빼고는 통증이 사라졌다. 다시 경추 사진과 MRI 촬영을 했다. 담당의사가 좀 놀랐다는 표정으로 결과를 말해주었다.

  “들쭉날쭉하던 경추 4번에서 7번 사이의 정렬이 거의 정상화되고, 경추 커브도 아주 좋아졌습니다. 1년 만에 이렇게 좋아지는 경우를 저는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그동안 열심히 노력했던 결과라고 생각하니 성취감이 느껴졌다.

 

  그러나 몸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잠시의 방심도 허용하지 않았다. 통증이 사라지자 긴장이 풀리면서 몸 관리를 게을리 하게 되었다. 하루는 벽에 기대어 책을 읽다가 그대로 잠이 들어버렸다. 밤새 구부러진 목을 떠받치느라 용을 쓴 목 근육은 아침에 일어나자 돌덩이처럼 굳어있었다. 목이 끊어질 것 같은 통증이 몰려왔다. 대부분의 만성질환은 나쁜 생활습관이 오래 지속되면서 생긴다. 평소 환자들에게 그 중요성을 강조하고, 지키지 않으면 그들을 질타하던 나다. 나 역시 자신의 질병 앞에서는 의사가 아니라 평범한 환자였다. 다시 병원을 찾아 경추촬영을 했다. 내 경추는 원래의 상태보다 더 악화되어 있었다. 나태함은 불안정한 내 경추 사이의 틈을 여지없이 파고들었다. 사진 속 들쭉날쭉한 경추 4번에서 7번 사이의 정렬은 40대 이후 내 삶의 굴곡을 암시하고 있는 듯 했다.

  몸이 기울어지면 마음도 비뚤어지는 것일까. 내 몸만 중심선에서 벗어난 것이 아니었다. 어제 한 환자가 찾아왔다. 전립선 문제로 오랫동안 다니던 60대 남성인데 한동안 오지 않았다. 항상 의심이 많고, 같은 질문을 반복하면서 내 대답을 확인하곤 해서 늘 경계하던 환자다. 나는 버릇처럼 그의 체형부터 살폈다. 왼쪽으로 기울어진 머리와 상대적으로 깊은 좌측 팔자 주름, 어찌나 내 모습과 유사한지. 경추 디스크 수술을 받느라 그동안 오지 못했다고 했다. 그의 왼손을 보았다. 손가락 근육까지 위축이 온 상태였다. 내 앞날을 보는 것 같아서 심란했다. 그와의 진료는 전과 다름이 없었다. 낫지 않는 만성병에 대한 불평과 불만, 어쩔 수 없으니 잘 치료해 보자는 위로와 격려…. 비슷한 질문과 대답이 오가면서 내 심기는 더욱 불편해졌다. 요즈음 나는 환자들이 질문을 많이 할까 두려워하고 있다. 몸이 아프니 대답하기가 벅차고, 혹여 실수나 하지 않을까 조심스럽다. 

  “원장님, 얼굴이 안 좋아 보이는데 어디 불편하세요?”

  감추려 했던 내면이 드러난 것 같아서 뜨끔했다.

  “사실은 저도 경추통증 때문에 고생하고 있습니다.”

  “아니! 의사도 아프나요?”

  동병상련이었을까, 아니면 빈정거림이었을까. 피해 의식 때문이었는지 그의 말은 후자처럼 들렸다. ‘너도 아파보니 알겠지. 제 몸도 관리 못하면서 어떻게 환자를 돌보냐?’는 비웃음으로. 의사도 아플 수 있다는 그 당연함을 사람들은 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일까. 잠시 눌러 놓은 내 감정의 껍질은 일순간 벗겨지고 그 내용물이 튀어 나왔다. 나는 노기에 찬 어조로 그를 쏘아붙였다.

  “왜요, 의사는 사람이 아닌가요?”

  예상치 못한 내 반응에 그의 얼굴에는 당황한 빛이 역력했다. 그는 더 이상 말하지 않고 나가버렸다. 후회되었다.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 아닌가.


  의사로서 나는 초심에서 벗어나 있다. 인간은 나약한 존재이기에 의사가 자신의 아픔을 상세히 살펴주기를 원한다. 이는 환자로서 내가 가졌던 담당의사에 대한 바람이기도 하다. 하지만 의사는 의학적 경중에 따라 나름의 잣대로 환자를 대한다. 어쩔 수 없다고 판단하는 환자의 토로는 푸념이겠거니 하면서 지나친다. 경미한 아픔도 그들에게는 전부인 것을. 지금 같은 정보화 시대에서 모든 의학지식을 의사가 독점하기는 불가능하다. 스스로 진단하고 치료 방법까지 알아 오는 환자가 수두룩하다. 결국 요즈음 의사의 주된 역할은 그들의 아픔에 공감해주고,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주는데 있지 않을까 한다.


  깊은 밤, 사방은 고요하다. 정적을 뚫고 벽시계의 초침소리가 들려온다. 가만히 시계를 응시한다. 시침, 분침, 초침이 나름의 속도로 돌아가고 있다. 초침과 분침의 모습이 시침을 좇아서 매시간 이어지는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를 연상시킨다. 경쟁사회에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현대인의 일상도 이와 다르지 않다. 그런데 세 바늘은 왜 같은 궤적을 같은 방향으로 반복해서 돌아가는 걸까, 그저 주어진 운명이라 여기고 순응하는 걸까, 그렇더라도 그들에게 꿈은 있지 않을까, 그들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의문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시계 중심선의 정점인 12라는 숫자는 그들의 지향점이며 정각 12시에 함께 만나는 것이 그들 모두의 꿈일 거라고, 이 순간은 하루에 두 번 뿐이라 그만큼 소중하다고, 꿈이 있기에 그들의 단조로운 움직임마저 아름답다고, 그리고 이것은 우리 인간의 삶에서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밤 11시 30분이다. 하루를 정리하려는데 지난 이틀간의 일들이 스쳐간다. 어제 그 환자가 내원했던 일…, 오늘 오후 수영강변을 산책했던 일. 몸도 마음도 오롯하지 못한 나를 느낀다. 돌연 시곗바늘 위로 오늘 보았던 그림자 속의 내 모습이 겹쳐진다. 머리는 시침에, 몸통은 분침에. 

  ‘그래, 지금 내 모습은 밤 11시 30분이야!’ 

 

  지나온 내 인생길을 돌아본다. 누구나 저마다의 꿈이 있고, 살아가고 싶은 삶이 있지 않은가. 어린 시절부터 의사가 되고자했고 그 길에 들어섰지만, 내가 꿈꾸던 의사상(醫師像)에는 미치지 못했다. 아니 내 삶의 모든 면이 정오에서 30분 모자랐다. 어느덧 인생의 후반기, 21년차 개원의인 나는 새로운 꿈을 그리며 살아간다. 지금 꿈을 향한 나의 시계는 어디를 가리키고 있을까? 그렇다. 내 시곗바늘들은 밤 11시 30분에 위치한 채, 자정에 다가가려 애쓰고 있다. 마치 인체 중심선에 가까워지려 버둥대는 내 머리처럼.


  지금도 시간은 흐르고, 시곗바늘들은 돌아간다. 나는 잠시 시곗바늘이 된다. 돌이켜 보건데 정오를 향한 나는 초침이었다. 좌충우돌하며 분주하기만 했다. 삶의 후반기에 들어선 지금, 나는 시침이 되고 싶다. 그래서 분침과 초침을 아우르며 자정을 향해 나아가고 싶다. 비대칭에 머무를지라도 서서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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