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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령의사수필문학상

수필은 마음의 산책입니다. 그 속에는 인생의 향기와 여운이 숨어있다. - 피천득의 '수필'중에서

뒤틀어진 죄

  • 연도2020년
  • 수상동상
  • 이름배승민
  • 소속가천대 길병원
뉴스를 보는 순간 나는 알았다. 학대로 사망한 아동이 몇 년 전 진료실에서 만났던 그 아이라는 것을. 다음날 아침, 거의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무거운 몸으로 출근했더니 당시 그 아이를 평가했던 병원 직원은 눈이 붓다 못해 얼굴까지 퉁퉁 부어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한동안 아무 말 없이 외래 앞 벤치에 앉아있었던 것 같다. 병원 안은 점점 사람들로 북적이며 평소의 분주한 소음으로 채워지기 시작했건만, 우리 둘은 그 날, 수족관 안에 갇힌 마냥 웅얼거림의 그 소음을 쫓아가지 못했다.

부지불식간에 온 몸을 찌르르 두들기고 간 고통은 예상보다 오래갔다. 하지만 그와 비등하게 신경써야할 환자들과 사건들은 여느 때처럼 쉴 틈 없이 밀려들어와 감상에 젖어있을 사치는 그리 넉넉하지 않았다. 긴장을 놓을 수 없는 일상에 치이다보니 몸을 관통하듯 치고 간 그 사건의 충격도 희미해져가던 어느 날이었다. 외래 환자의 검사 결과가 나오기를 기다리느라 나는 진료실에 있었다. 언제 나올지 모르지만, 나오는 결과에 따라 바로 치료가 진행되어야 해서, 결과가 뜨는 모니터 화면 앞에 꼼짝없이 대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마냥 초조하게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나는 결국 한쪽 모니터에는 결과가 나올 화면을 올려놓고선 다른 모니터로는 그간 밀렸던 컴퓨터 파일 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틈틈이 결과가 뜰 반대쪽 화면을 흘끔이면서 기계적으로 산재된 파일들을 하나하나 열어보고 삭제하거나 적절한 폴더로 옮기던 중, 한 파일이 나왔다. 대충 보니 몇 년 전 법원으로부터 요구받아 작성했던 의견서였다. 당시 최종본은 출력해서 등기로 보내고 난 뒤, 전자파일은 그대로 둔 채 잊어버렸던 것 같다. 이미 몇 년 전 끝난 일 같아 그냥 삭제하려다, 언뜻 색깔을 달리하여 강조한 부분이 눈에 띄었다. 다른 편 결과 모니터는 여전히 미동도 없었기에, 예전엔 내가 뭐라고 의견을 달았을지 궁금함에 남는 시간동안 남의 글 읽듯 내용이 기억나지 않는 내 글을 읽기 시작했다. 그간 의견서를 보냈던, 비슷해 보이지만 각각이 최악이었던 사건들이 수년 간 쌓여서일까, 몇 년이 지난 건들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렇게 몇 줄을 읽은 뒤에야 깨달았다. 그 글은 내가 뉴스에 나온 사망한 아이를 진료실에서 처음 만났을 때 했던 평가에 대해 법원의 질의사항에 답한 의견서였다.

병원에서 검사를 했던 시기, 법원에서 나에게 의견을 물었던 시점, 그리고 그 아이가 결국 죽어서 발견된 날 사이의 시간적 간격이 몇 년씩 존재해서 그런지, 내가 그 아이를 검사하고 결과를 알려주는 동안 외래에서 몇 번 만났던 것만 기억날 뿐, 법원에서 그 아이에 대한 당시 내 소견을 묻는 서류를 보내왔던 일을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처음 만났을 당시 아이는 발달이 상당히 늦었고, 비슷하게 또는 더 심한 문제가 있는 형제들과 함께 발견되었다. 몇 년 뒤 아동학대가 의심된다며 신고 되었지만, 별다른 증거가 없다보니 법원은 궁여지책으로 그나마 몇 년 전 아이들이 시설에 맡겨져 있던 시기에 검진을 했던 나에게까지 의견을 물었나보다. 당시 아이에 대해 여러 평가를 했지만, 발달 문제로 의사표현이 거의 불가능해서 결국 명백한 증거는 찾아내지 못했다. 당시에는 이 아이가 결국 학대 끝에 사망할 것이라는 것을 눈치 못 챘지만 나에게 의뢰한 기관도, 대답하는 나도 나름 참 고민은 많이 했구나..라는 구태의연한 생각을 하며 글을 읽던 나는 그만 의견서의 마지막 문장에 명치를 걷어 채인 듯 눈을 질끈 감았다.

법원의 질의에 대해 의견을 정리해서 적은 뒤, 당시의 나는 일반적이지 않게 단락을 달리하여 다른 색깔로 추가 의견을 달아놓았던 것이다. 통상 법적인 서류에는 개인 의견을 되도록 배제하고 전문가로서 객관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의견서를 적도록 훈련받았고 지금도 그렇게 쓰고자 최대한 노력한다. 그런데 과거의 나는 어찌된 일인지 그 원칙을 어기고 있었다. 추가적으로 개인적인 의견을 첨언하고 싶다는 말로 시작된 마지막 단락은 문장이 길지 않았다. 학대와 폭력의 피해자를 진료한지 십여 년이 넘어가지만 이렇게 발달과 환경의 어려움을 지닌 아이가 자신의 형제를 보호하는 행동을 보이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며, 따라서 이 아이들의 복지에 심각한 위협이 있는 것은 아닌지 매우 우려되기에, 지금 당장은 확실한 증거가 없더라도 이 아이들의 보호를 위해 법적으로 할 수 있는 모든 조치가 취해지길 바란다는 내용이었다.

분명히, 당시의 나는 훗날 일어난 그 끔찍한 일들을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아니 믿고 싶지 않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비겁한 나는, 그나마 최선의 방법이랍시고 통상적인 형식에서 약간 벗어나 법원에 아이들의 안녕을 부탁한다는 추가적인 말을 적었던 게 아닐까. 그리고는 나름 최선을 다했다는 얄팍한 마음으로 그런 서류를 보냈던 사실 조차 잊어버렸던 것은 아닐까.

굳이 대학병원에 정식으로 검사를 의뢰했던 시설의 담당자도, 아이의 발달상태를 검사하며 그 찜찜함을 표시했던 나도, 그리고 한번 신고 된 이후 최대한의 정보를 모아 알아보고 판단을 내렸을 법원의 관련자들도. 이런 아이들을 보호할 수 있었던 체인들이 단단히 엮이지 못하거나 흩어져 무력해진 끝에 아이를 가해자의 손안에 돌려보내고야 말았다.

그 아이의 소식을 뉴스로 접했던 그 날의 충격은 세월이 흐른 뒤에도 다시 한 번 둔중하고도 날카롭게 내 온 몸을 관통하고 지나갔다. 가해자의 손과 발만이 아이를 해친 것일까. 발달이 늦어 차마 말로는 전하지 못한 공포의 순간을 찾아내는데 실패하고선, 최대한의 안전을 도모해 달라는 몇 줄의 비겁한 글이 과연 나의 죄책감을 덜어줄 수 있는 것일까 손끝이 떨려왔다.

마우스를 쥐고 있던 손가락이 흔들리며 갈 곳을 잃고 허공을 헤매는 중에 기다렸던 환자의 검사 결과가 반대 편 모니터에 떴다. 다행히 결과는 매우 좋았다. 대기실에 있던 환자에게 기쁜 소식을 전한 뒤 그나마 오늘의 진료는 무사히 끝났다며 담당 간호사와 인사를 나누고 자리를 떴다. 인적이 드문 길로 들어서자마자 북받쳐 오르는 눈물을 막을 수가 없었다. 새하얀 가운이 무거운 납과 같이 온 몸을 짓눌러 발걸음을 옮기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렇게 차가운 벽에 기대어 서서 나는 나를 포함한 어른들의 죄를 누군가에게 쉼 없이 고백했다. 전문가를 자처하는 그 많은 어른들과 기관이 실패한 뒤, 결국 그 아이의 죽음만이 더 어린 형제들을 구했던 뒤틀어진 세상의 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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