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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령의사수필문학상

수필은 마음의 산책입니다. 그 속에는 인생의 향기와 여운이 숨어있다. - 피천득의 '수필'중에서

이송

  • 연도2020년
  • 수상동상
  • 이름우샛별
  • 소속동탄연세소아청소년과의원

산부인과 인턴 때였다. 한밤중에 서울에서 순천까지 고위험 산모를 이송하던 중이었다. 이송 직전 들은, 친한 동기이자 동료인 K가 말기 위암으로 위독하다는 소식에 침통한 기분이 영 가시지 않던 차였다. 시간이 되는 다른 동료들은 소식을 듣자마자 K에게 달려가 마지막을 지키고 있었다. 그런데 가장 가까운 친구 중 하나인 나는 그러기는커녕 환자 이송이나 하고 있다니. 이 시점에 꼭 고향에 내려가 아이를 낳겠다고 고집을 부린 산모에게 슬며시 원망이 옮겨갔다. 나는 사설 구급차의 딱딱한 의자에 비뚜름히 기대어 앉아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저기, 선생님.”

  산모가 얼굴을 조금 찡그리며 내 가운 자락을 잡았다. 나는 얼른 몸을 바로 하고 산모의 위에 있는 실내등을 켰다. 

  “왜 그러세요?”

  “배가 좀 아픈 것 같아요.”

  순간 침통함이고 원망이고, 모든 감정이 일시에 다 날아갔다. 응급상황에 대한 의사로서의 본능적 긴장감으로 머리카락이 삐죽 솟았다. 나는 재빨리 모니터를 확인했다. 낡은 모니터의 숫자들은 다행히 정상범위였지만 안심할 수는 없었다. 나는 날카롭게 소리쳤다. 

  “기사님, 빨리 좀 밟아주세요!”

  기사가 사이렌 소리를 좀 더 빠른 박자의 것으로 바꾸었다. 긴장 때문인지 아니면 통증 때문인지 내 손을 붙든 산모의 손이 땀으로 축축했다. 나는 간절한 심정이 되어 그 손을 마주 꼭 붙들었다.

  “선생님, 약 같은 거 없습니까? 무슨 처치를 해주셔야죠. 지금 응급 상황 아닌가요?”

  나를 보는 보호자인 남편의 얼굴에 불안이 가득했다. 하지만 구급차 안에는 내 곁에 있는 산소통 하나가 전부였다. 나는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직은 괜찮아요. 저기 모니터를 보시면….”

  하지만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산모가 지금까지보다 더 큰 소리로 본격적인 신음을 뱉었다. 남편의 얼굴이 험악해졌다. 내가 무어라도 하지 않으면 남편이 나를 가만 두지 않을 것 같았다. 거기다가 산모가 통증으로 숨을 헐떡여서인지 지금까지 괜찮았던 모니터의 숫자들이 널을 뛰기 시작했다. 나는 산부인과를 돈 지 고작 일주일 밖에 되지 않는 인턴이었고 내 머릿속에는 학교에서 배운 얄팍한 지식들 밖에 없었다. 거기다가 지금 내 손에 있는 것이라고는 고작 산소통 하나 뿐. 나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황급히 산소마스크를 꺼내어 산모에게 씌우고 산소를 끝까지 다 돌려 틀었다. 나는 불안한 마음을 감추고 최대한 침착한 표정과 목소리를 가장해 보았다. 

  “숨을 쉬세요, 천천히. 그렇게 헐떡이면 과호흡으로 이산화탄소가….”

  “선생님, 선생님.”

  산모가 내 가운자락을 힘주어 꾹 쥐었다. 설마 아이가 나온다는 말을 하려는 걸까. 나는 긴장으로 쿵쿵대는 심장을 부여잡고 얼굴을 찡그린 산모에게 귀를 가까이 가져다 대었다. 산모의 입에서 나온 말은 다행히도 의외였다. 

  “저기, 배 좀 만져주세요. 그러면 좀 나을 것 같아요. 엄마가 그렇게 해주시면 금방 좋아졌거든요.” 

  그런 민간요법은 별 소용이 없어요, 라고 평소처럼 매정히 대답하기에는 차 안에 있는 모두가 너무 간절했다. 더는 할 수 있는 것이 없기도 했고 말이다. 환자의 마음을 편하게 해 줄 수 있다면야 의사로서 무엇이든 못할까. 결국 나는 군 말 없이 팔을 걷어붙이고 산모의 배에 손을 얹었다. 커다란 산모의 배를 조심스레 천천히 문지르기 시작했다. 나머지 한 손으로는 산모의 손을 꼭 잡은 채였다. 

  사정없이 덜컹대는 차 안에서 나는 애원하듯 빌었다. 착한 아가야, 조금만 더 있다가 나와 주면 좋을 텐데. 여기서 세상에 나왔다가는 나는 너와 엄마를 구할 수가 없게 된단다. 나는 간절히 중얼대며 산모의 큰 배를 둥글게 쓸었다. 옆에서 남편이 눈을 감고 중얼중얼 기도를 하면서 드문드문 코를 훌쩍였다. 눈가가 빨간 것을 보니 울고 있는 모양이었다. 나의 어설픈 모습을 보건데 나보다는 하나님한테 매달리는 것이 더 가망이 있다고 생각한 듯 했다. 그 와중에도 산모는 어디선가 배워 온 모양인지 규칙적인 박자로 특이한 소리를 내며 심호흡을 반복했다. 구급차의 기사는 심각한 표정으로 이리저리 핸들을 꺾어가며 곡예에 가까운 운전 실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나를 포함한 이 차 안의 모두가 나름대로 굉장히 필사적이었다. 

  산모가 얼굴을 서너 번 더 찡그리고 나와 산모의 손 사이에 축축한 땀이 잔뜩 흘러넘치기 일보 직전이었다. 

  “다 왔습니다!” 

  기사의 뿌듯한 외침이 차 안에 울려 퍼지자마자 나는 총알같이 구급차의 문을 열고 뛰쳐나갔다. 저만치서 다가오는 순천 병원 의사들이 마치 구원자같이 느껴졌다. 여기요! 여기 환자가 급하다구요! 나는 있는 힘을 다해 소리치는 동시에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무심코 훔친 목덜미에 식은땀이 축축했다. 눈가 역시도 어쩌면 축축했을 지도 모른다. 


  환자를 넘겨주고 나자 완전히 긴장이 풀렸다. 후들후들 떨리는 다리를 억지로 끌어 캔 커피를 하나 뽑았다. 병원 로비의 의자에 막 앉았을 때였다. 핸드폰이 울렸다. 나에게 K의 소식을 전해주었던 동료였다. 나는 애써 밝은 목소리를 내어 보았다. 

  “아직은 괜찮은 거지?”

  […아니. 조금 전에 떠났어.]

  그 순간 탁, 속에서 무엇인가 끊어졌다. 긴 이송 동안 애써 괜찮을 거라 생각했는데, 울지 않기 위해 참았는데 아무 소용이 없어졌다. 힘주어 치켜뜨고 있던 눈꺼풀을 떨어뜨리자 눈물이 볼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렸다. 

  한동안의 울음이 조금 잦아들었을 때 동료가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장례식장이 제주도라는데, 갈 수 있겠어?]

  “가야지.”   

  전화를 끊고, 눈물을 닦고 나는 숨을 한 번 크게 들이쉬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한 외줄타기를 마치고 났더니 이제는 무서울 것이 없었다. 그 자리에서 바로 핸드폰을 꺼내어 다음날 저녁 제주도행 비행기를 예매했다. 돌아오는 비행기는 없었다. 어떻게든 되겠거니, 안되면 배라도 타고 돌아올까. 어이없는 생각을 하며 나는 빈 커피 캔을 쓰레기통에 시원하게 던져 넣었다. 

  기다리고 있던 구급차에 다시 올랐다. 돌아가는 길에는 뒷좌석에 탈 필요가 없어 조수석에 앉았다. 

  “선생님. 어떻게, 빨리 올라가 드릴까요?”

  친절하게 물어오는 기사에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천천히 가주세요.” 

  “그래도 됩니까?”

  “네. 느릴수록 좋아요.”

  “것 참, 돌아갈 때마다 선생님들은 다 비슷한 말씀들을 하시네.” 

  기사가 고개를 갸웃하며 차의 시동을 걸었다. 나는 무거운 몸을 풀썩 의자에 묻고 창가에 가볍게 머리를 기댔다. 차가운 유리창의 온도에 긴장으로 뜨끈하니 열이 올랐던 머리가 천천히 식었다. 사이렌 소리 없이 조용하게 차가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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